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전후 역사학의 아시아관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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작성일 23-12-31 17:29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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`전후 역사(歷史)학`은 강좌파의 문제의힉을 승계하며 성립했다.
·1945년 역사(歷史)학연구회가 전문적 연구의 색차가 짙은 활동 재개, 1946년 민주주의과학자 협회도 활동 개시→`혁신`적 역사(歷史)학 연구 및 역사(歷史)교육의 운동 담당. 구성원 대다수는 `마르크스주의`, `마르크스주의적`인 입장의 사람들.
·강좌파 理論(이론)의 원점은 Japan의 후진성의 극단적 강조와 유럽 근대의 선진성의 과대평가였다. (패전후 Japan에서 우선적으로 문제되었던 `아시아`는 점령하의 일국사적 틀에서 자신의 후진성을 의미하는 `내면적 아시아` ← 아시아 전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님)
·마르크스 주의…(생략(省略))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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전후 역사학의 아시아관


2. 전후 역사(歷史)학의 출발과 `후진 의식` `피해자 의식`
·패전에 의한 근대 Japan의 좌절은 `황국사관`에 사로잡힌 Japan인에게 새로운 역사(歷史)의식. 아시아관을 제시하는 책무를 사회과학, 특히 역사(歷史)학 연구에 부과하게 되었다. `Japan인·Japan사회의 비참함`, 즉 Japan의 아직 충분히 근대화 하지 못했다는 `후진의식`이며 그 때문에 비참한 희생을 치러야 했다는 `피해자 의식`이었다.
⇒이후 `아시아적 정체성론` 극복 , 유럽 근대를 기준으로 한 `후진의식`에의 반성은 역사(歷史)학계 공통의 문제 의식이 되어갔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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