Download : 검도의 역사.hwp
설명
검도의 역사에 대해 설명(說明)한 data(資料)입니다.
레포트/법학행정
Download : 검도의 역사.hwp( 74 )
검도의 역사
순서
다.제 37회 때는 중,고부를 加하고 제38회에 가서 대학부가 加하게 되어서, 오늘날에 이르렀다.
*9 WKC - 1994년 파리에서 개최하였으나 우리 한국은 단체전 2위, 개인전 입상없이 기록되었다. 기록상 1935년 제 16회 대회기록에는 휘문고보의 강성균 9전 9승, 1936년 제 17회 조선무도관의 정석래 승 1937년 제 18회에는 휘문고보의 강성균 7연승으로 그 기록이 남아 있고, 1938년에 소위 支那사변 반발로 중단하였다 한다.
검도의역사
,법학행정,레포트
검도의 역사에 대해 설명한 자료입니다. 심판장에 서정학 선생, 심판에 양춘성, 유기순, 김재일이 참가.
*8 WKC - 1991년 토론토 대회에서는 부진하여 단체전 2위, 개인전은 전패의 성적이었다. 그러다가 연차적으로 제 29회가 되는 1948년에야 시도대항전이 개막되었으나, 검도는 1955년 제 36회부터 일반부 대항전만으로 스타트되었다. 이 체전운영은 각 시도행정기관이 국민체육진흥이라는 국가시책의 일환으로 행하여진다. 국제심판으로 이호암, 양춘성이 참가. 동아일보 이광석 기자 동행함.
*6 WKC - 1985년 파리대회에서는 단체전 3위였으나, 개인전 마지막 4강전에서 Japan인 2명과 한국의 김경남, 박중채가 격전하였다. 이후 대동아전쟁 동안은 대회가 없다가 1945년에 당연히 개최하여야 할 것이나, 정치적 혼미 속에 간과된 상태였다.
제 26회 대회 이전의 어느 대회로부터 검도종목이 있었는가를 찾아보겠다. 국제심판으로 최상조, 이호암, 양춘성 참가.
*7 WKC - 1988년 서울에서 개최. 세계대회가 서울에서 개최되었다는 것은 실로 한국검도사 초유의 대 event이다. 이 대회에서는 단체전 2위, 개인전에서는 김경남이 3위였다. 또한 대회준비를 위해 도쿄와 서울을 오가며 국제준비집행회의에서 진력한 최상옥 회장과 이종림 전무, 이호암, 서병윤 이사를 기억하여야 할 것이다. 그 당시 Japan과 쌍벽을 이루는 한국검도의 자부심을 갖게 하였으나 한국은 2명 다 3위에 머물렀다.검도의역사 , 검도의 역사법학행정레포트 ,
. 검도경기의 脈
(1)전국체전
국내경기로서 해마다 10월에 막을 여는 전국체전은 1920년 서울에서 개최된 제 1회 대회부터 起算하여 회수를 계산하고, 부득이한 사정으로 대회를 열지 못하는 연도도 이를 통계한다는 규정에 따라 1945년 해방년도의 대회를 제 26회로 산정하게 되었다. 6 KWC때의 총회에서 7 WKC를 Japan 교토에 유치하고자 한 Japan측과 최상옥 회장과 故 도호문 선생의 공로를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. 그러므로 승패가 각…(To be continued )
(2)국제사회인검도선수권 대회
(3)세계검도선수권대회
*1 WKC - 1970년 Japan 개최. 단체, 개인전 모두 패.
*2 WKC - 1973년 미국 개최. 개인전 이종림 3위 입상.
*3 WKC - 1976년 영국 개최. 불참.
*4 WKC - 1979년 Japan 삿포르 개최. 단체전 2위.
*5 WKC - 1982년 브라질 상파울로 개최. 김동수 회장의 적극적인 지원하에 21세에서 30세까지의 젊은 선수를 선발하여 강화훈련을 여러 순서 하고 출전하였으나, 단체전 3위에 끝났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