오세창, 신석구 인물조사
페이지 정보
작성일 23-09-14 10:20
본문
Download : 오세창, 신석구 인물조사.hwp
20세에 역관이 되었다가, 1886년 박문국 주사로서 ≪한성순보≫ 기자를 겸하였다.
설명
Download : 오세창, 신석구 인물조사.hwp( 77 )
오세창, 신석구 인물조사
1864(고종 1)∼1953. 서예가·언론인·독립운동가. 본관은 해주(海州). 자는 중명(仲銘), 호는 위창(葦滄·乶松). 서울 출생. 조선 말기 China어 역관이며 서화가·수집가였던 경석(慶錫)의 장남이다. 1902년 개화당사건으로 Japan에 망명하던 중에 손병희(孫秉熙)의 권유로 천도교에 입교하였다. 1906년 귀국 후 ≪만세보≫·≪대한민보≫ 사장을 역임하였고, 3·1운동 때에는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활약하다 3년간 옥고를 치렀다. 1897년 Japan 문부성의 초청으로 동경외국어학교에서 조선어교사로 1년간 체류하였다.
다.오세창,_신석구 , 오세창, 신석구 인물조사인문사회레포트 ,




오세창,_신석구
순서
,인문사회,레포트
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.
레포트/인문사회
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.
1894년에 군국기무처 총재비서관이 되었고, 이어 농상공부 참서관, 통신원 국장 등을 역임하였다.